삶의 마지막 선택 앞에서 멈춰 선 비행기



공항은 원래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의 표정이 더 복잡하다.
이번 사건도 딱 그랬다.

안락사를 목적으로 해외로 출국하려던 60대 남성이 항공기 이륙 직전에 제지됐다.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상황이다.

가족이 먼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항공기 이륙을 지연시키며 남성을 내려 세웠다.

누군가는 과잉 개입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다행이라고 말한다.

정답은 늘 그렇듯 한 줄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출발점은 가족의 전화 한 통이었다.

“아버지가 안락사를 위해 출국하려 한다”는 신고였다.

그 한 문장이 비행 일정을 멈춰 세웠다.

경찰은 사실 확인이 필요했고, 항공사는 협조했다.

비행기 시간표는 숫자로 움직이지만, 인생의 시간표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서로 다른 속도가 충돌하면 활주로가 잠시 멈춘다.

스위스에서는 일정 조건 아래 안락사가 허용된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 환자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법의 언어는 차갑고 정확하다.

하지만 그 법을 향해 가는 사람의 마음은 보통 차갑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고통, 두려움, 피로, 체념이 뒤섞인 회색 덩어리에 가깝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항상 논쟁을 부른다.

개인의 선택권이 먼저인가.

가족의 보호권이 먼저인가.

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인가.

선 넘지 말라는 말은 쉬운데, 선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은 늘 어렵다.

이번 제지는 법적 판단 이전에 시간 벌기였다.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확인하고, 조금 더 이야기하자는 의미다.

급하게 닫힌 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냉정하게 보면 시스템은 작동했다.

조금 더 냉정하게 보면, 시스템이 개인의 결심 위에 손을 얹은 셈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하지만 모든 불편이 틀린 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선택은 계약서처럼 체크박스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관계다.

말리지 못한 후회와, 말려서 생긴 갈등 사이에서 사람은 늘 흔들린다.

공항 활주로 위에서 멈춘 건 비행기 한 대였지만, 실제로 멈춘 건 한 사람의 결단이었다.

그 멈춤이 누군가에겐 방해였고, 누군가에겐 구조였을 것이다.

이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자주, 더 차분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죽음보다 어려운 건,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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